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잃었다. 지옥 같은 월호재에서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가 사라진 순간, 이혼을 결심했다. “당신과 이혼하고 싶어요.” 유산을 인정하기 싫어 의사에게까지 아이의 죽음을 반문하지 않았다. 입에 담는 순간 진실이 될 것만 같아서. “겨우…… 죽은 아이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런데 눈앞에 있던 남자는 태연하게 유산을 입에 담았다. “헤어져? 누가? 당신이 헤어지고 싶다고 해서 내가 순순히 헤어져 줄 것 같아?” “서의헌 씨!” “한유월, 정신 차려. 당신은 나 없으면 안 되잖아. 당신은 나 필요해. 그러니까 지금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나야.” 도대체 왜……! 사랑 따위 주지 않겠다던 남자의 오만한 눈빛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겁도 없이 그의 생각을 읽으려 시선을 부딪쳤을 땐 이미 잇새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잿빛으로 검게 타들어 가던 강렬한 눈빛에 심장이 반응했던 탓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네가 좋아하는 돈, 명예, 권력. 나한테 많은데.” “…….” “한유월 씨, 그렇게 억울하면 내 아이 낳아. 그때는 원하던 대로 버려 줄 테니. 그게 우리의 결혼 조건이잖아?”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냉기가 시리던 그의 얼굴은 한 치 흔들림도 없이 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