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을 애정의 결실이라 생각하실 정도로 순진한 분은 아니시길 바랍니다.” 단태무가 원했던 혼인은 아니었다. 오만한 황제의 변덕에 놀아난 것일 뿐. 그런데 왜 자꾸만 재인이 눈에 밟히는지 모르겠다. 황제가 가장 아끼는 딸이 어째서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왜 걸핏하면 픽픽 쓰러지는지, 몇 날 며칠을 앓아 사람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차가운 표정 속에 숨긴 비밀은 무엇인지. “애정을 갈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단태무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인은 그가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복수를 완성할 장기 말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때가 될 때까진 딱 달라붙어 있을 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의 다정함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일까. 어째서 그의 온화함에 견고한 벽이 무너지는 것일까. 그것이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그런데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