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그리고』 ― 떠남과 사랑,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인생의 서사 ― 1994년 4월, 서울의 봄은 찬란했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군복을 벗은 스물넷의 청년 강인택은 벚꽃 흩날리는 거리를 걸으며 자유의 숨결을 느끼지만, 그 자유는 동시에 막막함이었다. 부대의 철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쏟아지는 현실의 무게, 부모님의 병과 가세의 몰락, 그리고 서서히 멀어져간 첫사랑의 그림자. 그의 청춘은 설렘보다 생존과 책임이라는 단어로 시작되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 어학연수를 꿈꾸지만 가난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던 그는, 한때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강병철 삼촌의 제안을 받는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사업을 확장 중인 삼촌은 그에게 뜻밖의 말을 건넨다. “영어도 배우고, 일도 해보거라. 세상은 넓고, 네 안의 가능성은 그보다 더 크다.” 그 순간, 강인택의 인생은 서울의 회색빛 하늘을 넘어 남태평양의 푸른 하늘로 이어진다. 낯선 언어,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단련하며 다시 태어난다. 웰링턴 공항에 내린 첫날, 그를 맞이한 것은 생경한 영어의 홍수와 현지인들의 빠른 억양, 그리고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공기의 냄새였다. 삼촌의 회사 **‘Korea Foods NZ’**에서 시작된 그의 첫 임무는 아시안 마트를 돌며 한국 식품의 진열 상태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업무 속에서 그는 세상의 질서를 배우기 시작한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며 식은땀을 흘리고, 손짓과 표정으로 겨우 의사를 전하며 밤마다 영어 단어를 외우던 청년은 서서히 “말하는 법”뿐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는 영어학원에서 일본인 유키, 독일인 하인리히, 브라질인 카를로스와 친구가 된다. 서툰 발음으로 서로의 문장을 교정하고, 작은 카페에서 나눈 대화는 그에게 ‘언어는 기술이 아니라 용기’임을 깨닫게 한다. 그들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타국의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나간다. 이 작은 연대는 인택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시간은 그를 성장시킨다. 3개월 후, 오클랜드 출장에서 그는 단독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며 삼촌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거둔다. 처음엔 떨리던 영어가 이제는 무기가 되었고,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자신감’이 자리 잡는다. 2년 뒤, Korea Foods NZ는 뉴질랜드 전역으로 유통망을 확장하며 한국 식품의 위상을 높인 선구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삼촌은 그에게 중대한 제안을 건넨다. “이제 이 사업은 네가 운영해라. 나는 네 안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날, 스물여섯의 청년 강인택은 드디어 자신만의 이름으로 회사를 이끄는 대표가 된다. 그러나 인생의 고비는 성공 이후에 찾아온다. 그가 구축한 시장을 노리는 중국계 대형 유통업체들의 저가 공세,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 그리고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의 정체성.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글로벌 시장의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그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인택은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품질로, 문화로, 그리고 신념으로 승부하기로 결심한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춘 순한 김치, 건강을 앞세운 유기농 고추장, 한복을 입은 직원들이 전통음악을 틀며 진행한 시식행사 — 그의 전략은 단순한 유통을 넘어, 한국 문화를 세계 속에 심는 ‘문화 사업’으로 확장된다. 그의 도전은 결국 성공으로 이어진다. 『Korea Foods NZ』는 뉴질랜드에서 한국의 맛과 문화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고,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조카”가 아닌 한 시대를 대표하는 글로벌 청년 기업가로 성장한다. 하지만, 인생의 균형은 언제나 새로운 시험을 예고한다. 어느 날, 오클랜드 미술관에서 열린 한·뉴 문화교류전. 그곳에서 그는 한 여인을 만난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조용히 그림 앞에 서 있는 그녀.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운명의 흔들림을 느낀다. 그녀는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요?” 그 질문은 곧, 인택 자신의 내면을 향한 물음이 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인, 그리고』는 한 청년의 성장담을 넘어 이민과 정체성, 사랑과 자립, 인간의 존엄을 다루는 세대적·철학적 성장 서사다. 1990년대 한국 사회의 불안과 2000년대 초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인물의 여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가난했던 스물넷의 청년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며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 이 소설은 떠남의 이유를 묻고, 돌아옴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하고 섬세한 문체로 그려진 인택의 내면의 변화는 독자로 하여금 묻도록 만든다. “진짜 떠남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은 어디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가.”『미인, 그리고 그것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모든 세대의 청춘에게 바치는 헌사다. 삶의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