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마세요. 내 아름다운 스승님.” 그는 제 손으로 죽인 스승을 살리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 하지만, 회귀의 부작용으로 전생의 기억을 전부 잊고 말았다. *** "앉아있는 게 꼭 버섯같네." 말을 걸어온 소년의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카이드는 제 키보다 훨씬 큰 그를 물끄럼 바라보다 흙바닥을 나뭇가지로 쿡쿡 찔렀다. "난 버섯 아냐." "버섯 같다는 거지." "못생긴 아저씨." "야!" 기사단장인 그는 신분에 비해 어리고, 단순했다. 카이드는 순진한 형이라 생각하며 몰래 비웃었다. '흥, 가볍게 놀린 건데 얼굴이 사과가 됐어.' "오늘부터 따로 자!" 소년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카이드는 보란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콩 굴렀다. "싫어." "침대는 내 거야. 집도 내 거야. 너는 3층 방에서 혼자 자. 난 못생긴 아저씨라 꼬마랑 절대 안잘거야." "싫어!" "나도 싫거든? 이 못난이 버섯아!" "......아델 님은 사실 예뻐. 엄청." "......난 남자니까 멋지다고 해." "엄청 멋져." "......." "예쁜 형아." "흥!" 소년이 코웃음을 쳤지만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는걸 숨기지 못했다. 카이드는 생각했다. '아델, 바보.' 카이드는 소년의 납작한 가슴을 몰래 쳐다봤다. '저번에 잘 때... 저기가 말랑말랑했는데. 배개로 삼고 자면 안되나?' "어딜 보냐?" "아델 옷이 멋져서." "아부해도 소용없다."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소년은 이미 숨길수 없는 기쁨으로 눈이 반짝이고 코가 벌름거렸다. 카이드는 소년의 소매를 꼭 잡았다. "아델, 난 아델이 좋아." '배개로 삼기 딱 좋거든. 다른 형들이랑 다르게 말랑말랑하니까.' 꼬마 카이드가 괘씸한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아델이 뿌듯하게 숨을 들이켰다. 소년, 아니 남장을 하고 있는 소녀는 카이드의 흑발을 장난스럽게 흐트리며 대꾸했다. "오늘은 특별히 장편 동화를 읽어주마!" . . . 꼬마 카이드가 무럭무럭 자라, 아델이 남들과 조금은 다르다는 걸 눈치 챘을쯤 소년은 생각했다. '내 어머니의 원수. 내가 너보다 힘이 강해지면 네 손과 발에 검을 꽂아 넣고 널 능욕하다 죽일거다.' "카이드, 무슨 생각 중이냐.” 그에게 한창 검을 가르켜주던 아델이 물었다. 아델의 흰 목덜미가 땀으로 촉촉하게 젖어 상기되어 있었다. "스승님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뭐? 하, 웃기는 놈." 아델이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귓덜미가 붉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제 스승을 보며 카이드는 남몰래 입매를 일그렸다. '변태. 남자 주제에. 나를 좋아하는 건가.' 물론 카이드도 아델을 보면 두근거리고, 때때로 그곳이 불끈 서기도 했다. 하지만 카이드는 그게 아델을 향한 증오 때문이라고 믿었다. 증오가 너무 심하면 흥분하기도 하니까. '절대, 전생의 나처럼 저 녀석과 입을 맞추지 않을거야. 전생의 나는 왜 그런거야. 우웩.' 중구난방 떠오르는 전생의 기억. 카이드는 아델의 입술을 흘긋 봤다가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아델은 입술이 예쁘긴 했다. 사실, 다른곳도 제법 예뻤다. 심장이 또 빨라지는 걸 느끼며, 카이드는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