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나와 살바토르 간의 치열한 전쟁이 발발했다. 소령이라는 직급으로 살바토르군을 이끄는 허레이스 허버트 그렌펠 공작과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남자아이인 척 살아남은 소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이별. 8년 후 그들은 비로소 다시 만났다. 소령과 소년이 아닌 공작과 숙녀로. *** 끼이이익, 쾅! 문이 조금씩 열리다가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빛이 쏟아졌다. 한 남자가 재킷을 손에 쥔 채 뚜벅뚜벅 걸어왔다. 사내의 오른쪽 눈은 잿빛이었다. 그래, 오래전 사샤가 빗물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한, 바로 그 눈이었다. “소령, 소령 아저씨!” “……넌, 누구지?” 그제야 사샤는 제 입장을 깨달았다. 아직 그는 사샤가 여자아이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황한 듯 눈가를 파르르 떨던 사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잠시간 말을 골랐다.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도무지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 맞아요. 제가, 공작님께서 거두어 주셨던 그 아이 사샤예요.” 결국에는 모든 걸 실토하고 말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벌이야. 정숙한 숙녀가 되지 못한 벌.” 그와 생각지도 못하게 가까워지고 말았다. 지나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