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고 잘래요?” 영진은 남겨 둔 보드카를 털어 마시고 처음 본 남자에게 제안했다. “생각 있어요?” 재차 묻자 남자의 잘 정돈된 눈썹이 꿈틀했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남자가 일어섰다. “어떻게 해 줄까요?” “그냥, 만져 줬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충동적인 하룻밤은 처음이라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적어도 영진이 아는 한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은 아니었다. “어제 하루 가지고 만족해요? 나는 영진 씨 만나고 싶어요, 미국에 있는 동안은.” 미래에 대한 약속 없이 끝을 예고하며 시작된 관계는 달콤했지만. “우리 둘이 있을 때 말고는 모르는 사이, 그러니까 완벽한 타인인 겁니다.” “알았다고요. 강여준 씨 나이도 안 물어볼게요. 됐어요?” 호기롭게 대답한 이 약속이 후에 얼마나 뼈저린 아픔을 겪게 할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