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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없는 나라에서부터.txt 서릿플 총 91화 91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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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고장미. 이름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내 인생은 완벽하게 고장났다. 아니,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고장나 있었는지도. 어느 날, 친구를 따라 사주카페에 갔다가 같이 간 김에 나도 덩달아 점을 본 적이 있었다. “가혹하도록 극심한 역마살에, 한없이 독한 도화살이로구나. 도대체가 어떡해야 이런...” 그리고 또 이어지는 언니같은 아저씨의 말 한마디. “매일 제 죽을 자리를 찾아 뛰고, 또 뛰는구나. 어린 것이, 가엾게도.” 27살, 취미로 내가 쓰던 이야기의 주인공을 그리다 늦게 잠들어 다음날 지각을 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다 결국 내 목숨처럼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던 부적을 집에 두고 왔음을 뒤늦게야 깨달았고, 그날부터 나의 인생이 완전 고장나 버리는데... 풋풋한 풋사과라고 생각했던 첫사랑의 고백은 눈물이 날 만큼 떫고 쓴 이별의 기억으로 남았다. “널 보면 늘 위태로워. 마음이 불안해. 네가 잘못될까 봐 걱정돼.” 첫사랑 도혁에게서 받았던 서투른 첫 고백의 앞에 나왔던 문장들을, 나는 늘 쓸쓸하고, 공허하고, 서러웠어. 나는 늘 나를 걱정했어. 하지만 지금은 너도 조금은 걱정돼. “류야. 나는 역시, 네가 자꾸만 걱정돼.” 너는 늘 위태로워. 그런 네가 걱정돼. 나도 모르게 어느새 품어진 그 마음을 신비한 그에게 뱉어버렸다. “...웃지 마. 이제 내 앞에서, 웃지 마.” 무뎌진 칼날같은 그 마음이 꺼내지는 게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다는 그 마음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을 잠식해버린 그 마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입술도 허하지 않아, 그래서 다른 곳에 입을 맞춰도 허하지 않아, 너를 보면 널 귀애하는 마음만 넘쳐 웃음밖에 안 나오는데 그것도 허하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네게 어찌해야 하는 것이냐. 그저 내 앞에서 나 좀 봐달라고 울며 빌까? 그걸 원해?” 그를 외면하려 애써 돌린 고개가, 그의 거친 손짓에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바짝 다가온 그의 붉은 눈동자는 아른거리는 달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의 애달픈 마음처럼 조금은, 서러운 달빛이었다. 류, 유현.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남자. 내가 쓴 이야기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두 세계의 시간을 거닐은 남자. 그날부터 그가 내 인생을 고장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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