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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단편집.1

어중간한 인간 2025-09-12 12:47:50 단편집.1 세상에는 높은 건물과 낮은 건물이 있고, 밝고 어두운 곳이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세계의 쓰레기장이라 불리는 가장 밑바닥인 도시. 도시라고 불리기 민망할 정도로, 부랑자들이 거느리는 결점투성이의 곳.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부랑자들의 도시이자, 세계가 가장 차별하고 없애고 싶어 하는 곳.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지, 나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부모님이 부랑자였기 때문이고, 내가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을 패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타악기를 두드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웃지 못할 농담인 건 나도 안다. '개새끼들.' 매번 내 판잣집 앞에서 지랄이다. 어디서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패는지, 보고만 있는 나도 구역질이 난다. 저런 쓰레기들이 왜 나랑 같은 세상에 사는지 모르겠다. 부랑자들은 심심하면 남자들을 데려와 돈을 뜯고, 여자들을 데려와 팬다. 그리고 자신의 입맛대로 쓴다. 거지들이 세상 참 거지같이 산다. 나는 벌레들이 먹고 있던 사과를 쓰레기통에서 주워 한입 베어 물었다. 벌레들 덕에 톡톡 씹히는 게 별미라고 생각했다. "야이! 새끼야! 그건 내 밥이야!" 어이쿠, 이런. 들켜버렸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죽이자. 인간들은 사실 별것 아니다. 베이면 죽고, 숨이 막혀도 죽는다. 하지만 난 힘없는 새끼 강아지일 뿐이다. 누가 패면 맞는 대로 맞아야 한다. '죽이고 싶네…' 배를 발로 차이고 머리를 밟혔지만 이 정도야 별것 아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맷집은 기본이니까. "이 새끼… 또 내 밥 건드리면 뒤진다! 씨발!" '겁쟁이 새끼…' 결국 죽이지도 못하는 놈이다. 왜냐하면 다들 '히어로'를 무서워하니까. 옛날에 흔히 듣던 혈통 천재들이 히어로가 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능력을 이식해 쓰는 히어로 부대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 봐야 나와는 쥐꼬리만큼도 상관없는 개소리다. "풉… 개나 소나 히어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곳은 쓰레기들의 낙원, 이런 곳에 히어로가 구하러 올 일은 죽어도 없을 거다. 그리고 히어로를 만들기 위해 올일은 더욱 없을 것이다. 나라도 멀쩡한 음식을 두고 썩은 것을 먹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다시 내가 사는 판잣집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굽어버린 허리를 조금씩 펴준다. 언젠가는 꼿꼿이 펴지기를 바라며 가끔 스트레칭을 한다. '13살에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지.' 어린 나이였지만, 배에는 칼자국의 흔적과 멍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더욱더 지워지지 않으며, 여차하면 팔려나가기 일쑤였다. 예쁘게 생겼으면 팔리고, 잘생겼으면 팔리고, 아주 외모지상주의가 따로 없었다. 부랑자들의 특징?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을 팔아 돈을 벌고, 만약 예쁜 아이가 나온다면 그 순간 벼락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가 된다고 좋은 건 아니다. '힘 있는 새끼들이 죽이고 갈취하니까.' 법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개 같은 세상, 사실 히어로들도 여기는 순찰하기 꺼려한다. 이유야 다들 알 거라고 생각한다. "왜긴 왜겠어~ 사건이 안 끊기니까." 나는 낡아서 다 부서진 나무 바닥에 누워서 피식 웃었다. 이런 개떡 같은 곳에서도 나는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내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마 이런 곳 말고 일반 세상에서 살던 아이를 던져 놓으면 오래 못 가 죽을 것이다. 맞아 죽든 약으로 죽든 여긴 언제 죽어도 모를 곳이니까. 다시 날이 밝고, 낡아서 삐걱거리는 내 소중한 집을 나와 먹을 것을 구하러 길을 나섰다. 어제와 같은 쓰레기통을 뒤지자 어제 그 부랑자가 내게 다가왔다. 손에 칼을 들고 살기 가득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내게 소리쳤다. "씨발! 건드리면 죽인다고 했지!" 부랑자들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픈 건 싫으니까, 저 칼은 피해야겠다. "어이쿠." 비틀비틀 달려오는 부랑자를 옆으로 밀어내며 피한 뒤,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으아아아아아!" 부랑자가 눈 부위를 부여잡고 소리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마 넘어지며 자신이 들고 있던 칼에 눈을 찔린 듯했다. 웃긴 놈. 저 녀석은 밖으로 나가서 개그맨 하고 살면 정말 최고일 듯했다. 몸개그는 인정한다. 내가 웃었으니까. 나는 마저 쓰레기통을 뒤져서 사과를 꺼냈다. 이번에는 좀 깔끔한 사과였다. 붉은 광이 나는 깔끔한 사과. 그런데 이런 상품이 이 쓰레기장에 올 리가 없을 텐데,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뭐 어쩌겠어…" 아삭 하고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입안에 느껴지는 달콤하고 상큼한 미친 맛의 사과. 내 인생에 이런 사과가 있었나? 싶은 달콤하고 상큼한 과즙이 내 혀를 감쌌다. 정말 최고의 사과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는 없을 맛을 은근히 즐기며 신나게 다음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밤이 되었고, 나는 천천히 나의 판잣집으로 걸어갔다. 화륵! '화륵?' 내 집 주변에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불타는 소리, 그 소리가 내게 불안감을 점차 증폭시켜주었다. '설마… 설마!' 발걸음을 점점 빠르게 움직여 집에 한 골목 남았을 무렵,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괴물 자식… 히히히히 내 사과를 먹은 죄다!" 그때 그 개그맨인가. 그리고 들려오는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중저음의 목소리. "닥쳐. 뱀새끼. 네가 내 동생이 아니었다면 그냥 무시했을 사건이다. 다음에는 알아서 처리해!" "예, 예! 행님!" 아, 누구인지 듣다 보니 알겠다. 내가 사는 구역에서 힘 좀 쓴다는 무리 중, 과거 히어로였다가 탈퇴하고 이곳에서 대장 놀이나 즐기는 곰탱이 새끼가 아닌가. 자기가 일을 팽개치고 술이나 마시다가 해고당한 건데, 그걸 이곳 사람들이 문제라고 헛소리 지껄이던 나쁜 놈이 아닌가. 그건 그렇고, 지금 저들이 태우는 건 내 집이다. 내게 오랫동안 부모님이 이곳에 날 버리고 나서부터 살아오던 내 러브 하우스가 저런 쓰레기들에게 유린당했다. 나는 이를 갈며 바닥에 있던 파이프를 하나 들고 골목을 돌아 소리쳤다. "애미 없는 새끼들… 뒤져!!!" "에에에에엥!" 나는 순식간에 개그맨의 얼굴에 쇠파이프를 갖다 대고 그대로 바닥으로 꽂아버렸다. '뒤!?' 뒤에서 날아오는 곰탱이의 주먹을 고개를 숙여 피하고 발로 차서 멀어졌다. "크윽… 저 자식은… 넌 뭐냐!" "나? 이 집 주인." 나는 싸움 같은 건 개뿔도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감각만큼은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공격도 어느 정도 집중하면 피할 수 있다만, 확실한 건 저 곰탱이는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덤비면 죽는다고 내 감각이 말해주고 있다. 나는 빠르게 달려 들어가 곰탱이의 고간을 발로 차고, 그의 몸이 움츠러들자 머리에 파이프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파이프가 휘었다. '파이프가… 휘었… 어?' 어이가 없어서 잠시 파이프를 봤는데, 퍽 하고 곰탱이의 주먹이 내 배에 직격했다. 주먹 한 방에 100미터는 날아간 기분이다. 입에서 붉은 피를 뱉으며 고통의 신음 소리를 냈다. "컥… 쿨럭… 쌕, 쌕." 숨 쉬는 게 힘들고, 공기가 들어오는 양이 적고 내뱉기도 힘들다. 폐 한쪽이 맛이 간 것 같다. 그때 내 앞에 곰탱이가 걸어와 머리채를 잡아챘다. "개 자식… 곤란하게 하고 있어." "쌕, 쌕…" "힘든가? 내 동생을 죽였으니 이 정도야…" "씨발… 내 집을 건드렸잖아… 컥!" 한 방, 두 방, 배에 곰탱이의 주먹이 강하게 꽂혔다. 이번에는 날아가지 않게 내 머리채를 잡고 강하게 때렸다. 날아가지 않아서 그런지 내장이 터진 듯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고통스러운가? 지금 용서라도 빌면 바로 죽여주지." 용서를 빌어도 죽고, 빌지 않아도 죽을 바에는 나는ㅡ "퉷… 엿이나 처먹어… 곰돌아…" "허!" 그의 얼굴에 핏대가 서는 것이 확실히 보였다. 아마 약하게 치려고 해도 난 죽을 것이다. 이미 장기는 맛이 갔고, 숨도 쉬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가기 전에 저 새끼 머리를 못 부수고 간 게 아쉬울 뿐이다. 펑! 내 배가 뚫리며 잠깐의 큰 고통과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이런 곳에서 죽었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던 내 마지막은 이리 비참한 죽음이라니, 한번쯤 부모를 원망이라도 할걸 그랬다. '부모도 아마 부랑자겠지..?' "으아아아아아!" 죽어가던 와중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명과 목숨 구걸, 그리고 내 목소리.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어치우겠다. 그 한마디가 조금 재미있었다. '죽었는데… 뭘 먹어... 풉.' 모음집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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