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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르와 강림도령단 16화 남편의 빈잔

스텔라70 2025-12-16 13:31:19 백작 부인이 "점점 더 이상스럽게  점점 더 알 수 없게   변해간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어느날  그녀의 거실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녀는 등의자에 걸터앉아서  뾰족한 책상 귀퉁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있었다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에 놀란 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는데 그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옛 일을 회상하던 칼라미는 불연듯 떠오른 걷어차버리고 싶은  낯선 남자의 등짝을 기억조차 하기 싫었다. 어느덧 마차 창문 밖으로 "초록 눈의 괴물"이  다가와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지위가 낮거나 "안방 출입 한량들의 능숙한 사교술이 없기 때문이거나" 내가  근육이 많고 마초적인 몸매가 아니거나 내가 시간이나 정성을  그녀에게 덜 쏟았던 때문일까 칼라미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공인 받은 치치스베오인데도 자리에서 쫓겨나 버려진 기분이었다. 칼라미는 머리카락을 헤집던  손가락으로  정수리를 뒤져본다 남편도 아니지만 머리에 뿔이 솟아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다른 남자와도 잘 지내는 모습은 그녀를 오히려 더욱 야하게 만들었다. 스스럼없는 여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수컷 본능의 야릇한 감정이었을까. '초록눈의 괴물'은 '메피스토텔레스'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저 '제비새끼(배우자 밀렵꾼)'의  자리를 빼앗아 남자로서 아냐를 차지하게 된다면 네가 그 집 사위가 될 수 있어. 남편에게 가졌던 열등감도  사라지는 거야. 그와 대등한 지위가 될 수 있어. 더 가까워진다면 네가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정복자도 될 수 있단 말이야." 칼라미는  그녀를 갖겠다는 욕망이 더 강해졌다. 그가  처음으로   화려한 저택의 정원에 들어섰을 때  백작 부인은 "친구들과 같이  꽃 이름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던 탓에 그녀와 친구들 사이에는 이미 갖가지 꽃들이 잔뜩 놓여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아름다웠다. 부인들과 그들 사이사이에 낀 젊은 신사들은  모두 백작 부인의 "벌칙을 받으려고 이마를 내밀고  있었다" 귀부인들의 치치스베오였다. 백작 부인은  자기의 우윳빛 손가락이 벌써 아프다는 제스처를 했고  모두들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칼라미의 눈동자가 커졌다. "나도 저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이마를 얻어 맞아봤으면 그러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장 내동댕이쳐도  상관없을  것 같다" 여지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기쁨과 흥분이었다. 이제 저 부인과 '세상에서 2번째로 가까운 남자' 가 된다는 생각으로 그의 가슴에는 희망과 희열이 넘쳐흘렀었다. 한동안 앉아서 회상하던 그는 어이없는 듯 웃었다.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머리를 흔들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유 없이 스며드는 허전함 술 취한 코끼리같은 마음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도 자꾸 잡념이 달라붙고 있다. '그 놈을 빨리 없애버린다면?' "사뭇 살인을 하려는 각오를 가지고 질투에 불타던 오셀로는  별안간 '칼라미'로 변하고 말았다" 우상과도 같았던 이르판은 완벽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걸 눈치채버린 것이다. 메피스토가 그걸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귀를 끊임 없이 파고들고 있다. 그가 알던 세계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그의 두뇌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메피스토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칼라미는  무이임풍의 콘서트가 있던 날 후작 부인을 우연히 만났고 소문이 퍼지기 전에 해결하는 편이 실패한 치치스베오라고  놀림 받을 것이 뻔한 자기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자기는 친구다. 더구나 감시 역할도 해야 하는 치치스베오다. 자기를 믿고 맡긴 당사자에겐 욕 먹는 한이 있어도 신임을 잃어버릴까 두렵긴 했지만 꼭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날 밤  남편에게 일름보했다. "후작 부인이 2시간 가까이 지켜본 결과 보통 사이가 아님이 확실하다" 라면서 줄줄이 시작한 얘기를 그대로 다 옮겼다. 물론 자기가 직접 목격했던 사실은 숨겼다. 이유는 "직접 불륜 행위를 보지는 못했기에 그녀가 아직 순결할지 모르기" 때문이고 굳이 얘기해 봐야 남편 혈압만 더 올릴 게 뻔했다. 칼라미의 이야기를 듣고  심각해진 이르판은 순간순간 울컥했다. '칼라미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과장이나 허품도 떨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니 아냐가 요즘 좀 이상하긴 하다.' 이르판은 배신자 아냐도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여전히 그녀의 배경이 필요했다. 여러모로 그녀에게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태연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바로 2층으로 사라져버리자 자신의 오른팔인 칼라미에게는  잔인하고 냉정한 얼굴을  보여야만 했다. "후작 부인이 말한 그 놈을 제거해버려야  문제가 말끔히 해결될 거야." 칼라미는 평소처럼 강하게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칼라미는 친구의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충격과 슬픔을 느끼면서 자기도 슬픈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 얼굴을 감추고자 직접 맥주를 가지러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남편의 빈잔] 오늘도 이르판은 일에 매달렸다. 일찍 퇴근하기 싫기도 했다. 칼라미가 같이 퇴근하자고 찾아왔다. "같이 나가서 술이나 한잔 어때? 이 근처 새로 생긴 술집이 괜찮다던데." 이르판은   "다음에 하세. 장인 어른과 약속을 해 놓았어. 그걸 상의하자고 연락주셨더군" 물론 거짓말이다. '일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칼라미가  "혼자라도 한잔 해야겠어." 이르판을 힐끗 보더니 단념한다. 아쉬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이르판은   위스키 잔을 채우며 의자에 깊숙이  땅 속으로 꺼지듯 몸을 묻는다. '이제 나 혼자야' 이제서야  조금은 긴장이 풀린다. '결혼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 부부는 화목하고 다정했다. 그러나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그 다정한 화목함 아래에는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불만족이 흐르고 고독의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아내 옆에 누웠어도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것 같은 고독을 느꼈다. 확실히 그래 확실히 최근에는 더 그랬지.' 이르판은 위스키 잔을 다시 채우며 며칠 전  자선 바자회를 간다며  혼자서 집을 나서는 아냐를 떠올린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아내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냐는  평소의 모습과 어딘가 달라 보였다 약간 길쭉한 얼굴에  붉은  입술은 도톰해 보였고  원피스 안에서 흘러내리듯  꿈틀거리는 몸의 곡선이 눈길을 끌었다" '괜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 질투라는  "희생물을 비웃으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잡아먹는  초록 눈의 괴물(green-ey’d )"이 지금 이 순간 이르판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아내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 놈하고 있을까? 내 침대에 누워 있을까? 집에 혼자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어떤 아편이나 최면제 이 세상 졸음 오는 모든 물약을  다 마셔도  지난 날 당신과 나의 달콤했던 그 잠을  다시는 즐기지 못하리라" '날 사랑하고 있긴 할까? 그 동안 아냐에게 너무 소흘했던가? 그때  절벽 위 에델바이스를  꺽어 온 사람이  그 놈이 아니라 나였더라면? 그때 내가 그랬었다면? 그 놈이 뱀에 물려 뻗었을 때 왠지 서늘하고 불안했었지. 그 하찮은 놈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감상적인 이유가 아니었어.   나도 모르게 이런 걸  예감했던거야. 그 놈이 이제는 나를 무슨 눈으로 바라볼까? 지금 내 집에 찾아와서 정말로 내 침대에 누워 있지는 않을까?' 새삼스레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아니 잊고 싶었던 기억. 이르판은 장인 어른의  냉담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냐만 믿고 처음 찾아갔을 때 자기를 바라보던  차가운 눈빛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장인 어른이 만들었던 그 분위기는 지금 내 앞에서 정열적인 위스키에 둘러싸여 차갑게 응결된 안개를 뿜어 내는 이 얼음 조각과 같았다. "나의 영원한 평화여 안녕 잘 가라 만족이여  안녕 잘 가라" 안녕 나의 모든 커리어여.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로 부터 시작되는 역사를 새삼 들먹일 것도 없이 사교계 귀부인들이 바람을 피운 사례들은 주변에 차고 넘친다.  어이없는 조롱이 남편들에게 퍼부어졌지만  나는 남편들의 불행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불행을 안타깝게 여긴 적도 없었고 그 귀부인들을 볼 때마다  정숙하고 더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나 자신을 더더욱 대단하게  여겼을 뿐이었다. 이르판은 조롱받은 남편들이 그 뒤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자세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아 내가 "뿔달린 남편"이 되다니 치욕스럽구나 치욕스러워 난 이제 한낱 "괴물이고 짐승이야" 사람들은 나를 비웃고 있어.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어. "내  방에 머물며 내게만 속삭이던  귀여운 아냐는 이제 없다" 그래  그래  위대한 이르판아 이제 너는  "잃어버린 너의 아내가 아니라 잃어버린 너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 알겠나? '뿔 달린 남편 (cuckold, a horned man)'이란 말은 '아내를 도둑맞은 멍청한 남편'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단어다. 위스키 병에 남은 마지막 잔을 채우던 이르판의 두 손이  늘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는다. 술잔이 옆으로 튕겨지면서 크리스탈의 '쨍'하는 파열음이 어두운 공간을 마구 헤집는다. 이르판은 머리카락을 헤집던  손가락으로  정수리를 뒤진다. 머리에 뿔이 솟아 있을 것만 같다.  "온갖 슬픔과 불운을 버티면서 얻어냈던  그 동안의 보람이  고통의 사막 속으로 꺼졌다가 광란의 발작으로  튀어나오는구나 아, 지금 당장 저 거울에 칠한 수은이라도  핥아 먹고 싶다" 땅 속으로 땅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다. "파멸이  내 영혼을 사로잡더라도 나는 아냐를 진실로 사랑해 내 영혼 파멸하고 아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세상에는  혼돈이  다시 찾아오리라" 빈 술잔에 비춰진 그의 얼굴은 잔 안에 반쯤 남아서 녹고 있는 차가운 얼음과 잔 밖에 맺혔다 흘러내리는  싸늘한 이슬 때문에 조각조각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땅 속으로 땅 속으로 푹 꺼져버리고 싶다. 먼지처럼 날려서 사라져버리기 전에.' "신이시여 당신은 나에게 던질 수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불행을 다른 모든 비참함과 치욕을 신이시여  당신은  나에게 앗아갈 수 있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모든 기쁨과 환희를 나를 거지로 노예로 만들어도 나는 기꺼이  체념과 믿음을 가지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 아  너무 슬프게도 희망이 꺼져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아시스의 신기루가 고통의 사막 속으로 사라져 가듯이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은  나를 그녀에게 묶어놓았습니다 내 심장을 쥐어짜셨습니다 아   치욕스러움만이 불명예스러움만이 내 심장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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