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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단편집.9

어중간한 인간 2026-03-20 12:55:31 단편집.9 "그래서 마왕님...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마왕과 내가 앉아 있는 곳 밖은 피와 비명이 난무하고 있다. 용사 파티가 벌써 마왕성 앞에 있는 적들을 쓸어버리고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난 마왕군의 군단장으로 '미소의 광대'라는 별명이 있다. 매번 하얀색 웃는 가면을 끼고 얼굴을 가리고 다녀서 생긴 별명이다. 그건 그렇고 정말 곧 용사 파티와 싸우게 될 것이다. 어차피 죽음은 두렵지 않으며 그저 이번 생에 아쉬움이 남을 뿐이었다. 마왕님은 겉만 번지르르한 왕좌에 앉아 턱을 괴고 나에게 말했다. "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마왕님은 좋은 왕이시죠." 마왕님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바라보지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왕님은 남자, 나도 남자다. 마왕님은 내 성별을 모르기에 저런 마음을 품은 것 같다만 난 압도적으로 여자가 좋다. 서큐버스 퀸하고 결혼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예쁘고 친절하고 나만 바라봐 주었으니까.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큐버스 퀸은 용사에게 죽었으며 내 딸도 그녀와 함께 목이 잘려 죽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죽을 차례일 뿐이다. 난 마왕전 바로 전 중간 보스의 역할을 맡을 뿐이며 용사 파티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게 마왕님이 바라는 이번 생이니까. 마왕님은 마왕의 방을 나가려는 나를 부르며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날 좋아하느냐..." "남자끼리 좋아하는 생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농은 그만하시고 이제 죽으러 가는 절 보내주시죠." "여자면... 되는 건가?" "농담도 참..." 마왕님은 무언가 결심한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분홍색 실크 천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익숙한 향과 기운이 느껴지는 천에 나도 모르게 감고 있던 눈을 뜰 뻔했다. "유품... 이걸 어디서..." "자신이 죽으면 네게 주라더구나." "새끼..." 이제 조금 그리워졌다. 이번 생의 아내인 서큐버스 퀸이 남긴 유품을 꽉 쥐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우이자 사랑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나는 마왕의 방 밖으로 나섰다. 마왕의 방 앞 복도에 서서 미리 주변 지형을 계산하며 마지막 결전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내가 있는 복도로 들어오는 용사 파티가 눈에 띄었다. '이제 시작인가.' 나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용사 일행을 맞이했다. 그들이 당황하도록 감정이 결여되어 보이게 최대한 텐션을 올렸다. "반갑습니다. 용사 파티 여러분! 벌써 여기까지 오셨다니~ 박수를 짝짝 쳐드려야겠죠." 나는 박수를 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명은 경악을, 두 명은 미간을 찌푸리며 싫어했으며 용사는 입술을 깨물며 내게 검을 겨누었다. "넌 군단장 코드! 분명 널 죽였을 터..." "환영을 죽이신 거죠~"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하며 공중에 단검을 생성해서 잡았다. 단검을 휘휘 돌리며 그들에게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이번 마지막 전투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상대하기 위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가면 속 내 눈동자가 붉게 빛나자 용사 파티는 주춤하며 경계했다. "자 이제 쇼 타임입니다." 못해도 여기서 용사 파티 중 한 명은 죽이고 갈 것이다. '시간의 마안, 정지' 공기는 느려지다가 멈추고 주변 색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시간은 정지했다. 천천히 용사 파티의 뒤로 걸어가 단검으로 가장 까다로워 보이는 아처의 어깨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시간은 다시 흘렀고 아처의 비명을 시작으로 용사의 검이 내 목을 노렸다. 나는 생성의 마안으로 단검을 만들어 막아냈고 옆에서 빠르게 돌진해 오는 방패를 높게 점프해 피했다. 이어서 어깨를 다친 아처는 입으로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렸다. '시간의 마안, 가속.' 내 몸의 시간을 가속해서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여러 개의 단검을 생성해서 던졌다. 용사는 엑스칼리버를 크게 휘두르며 단검을 막을 방어막을 발동하려 했다. "이 정도쯤이야!!..어?" 나는 이 상황을 이미 예상해 두었기에 단검을 던질 때 시간의 마안으로 단검이 날아가는 시간을 삭제해 두었다. 그러니까 단검은 날아가는 과정을 삭제당했고 무언가에 꽂혀있다는 결과만 남은 것이다. 10개 정도의 단검이 용사와 그의 동료들의 신체에 꽂혔다. 고통의 비명과 코 끝에 흐르는 피의 향을 맡으며 나는 이번에는 단검 말고 직검을 생성해서 용사에게 달려갔다. 용사는 몸에 박힌 단검을 뽑으며 내 검을 막았다. 나는 최대한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미소 지었다. "어라라? 용사님~ 져버리겠어요~ 인류의 희망! 흐흐" "젠장!!" 용사의 엑스칼리버와 나의 직검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나는 검을 잡지 않은 손에 단검을 만들어 용사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내가 예상 못한 화살이 허벅지에 박혔고 잠시 움찔했다. 용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에 무게를 실어 나를 강하게 눌렀다. 나는 용사의 검을 튕겨내고 뒤로 빠져나왔다.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뽑으려고 화살을 당겼지만 뽑히지 않았다. "이건...?" 용사가 내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세계수의 특제 화살이다! 쉽게 안 뽑힐 걸!!" "그런가?" 나는 그대로 화살이 박힌 다리를 잘라버리고 용사의 검을 막았다. 용사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검에 무게를 실어 공격하며 소리쳤다. "너! 다리가 어떻게 재생이 된 거지?!!!" "비밀인데~" 나는 능글맞게 용사의 공격을 검으로 막으며 세뇌의 마안을 발동시켰다. '대상은... 탱커.' 세뇌의 마안이 발동되고 탱커는 갑자기 아처에게 미친 듯이 달려가서 방패로 짓눌러버렸다. 그 옆에 있던 힐러와 공주의 얼굴이 썩어가는 게 보였고 기분이 좋아졌다. 용사는 포효하듯 크게 소리치더니, 맹렬하게 나를 더욱 몰아붙였다. 나는 공격을 막으며 점점 뒤로 밀려나갔다. "군단장 코드!!!!! 이 개자식아!!!!!"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배신은 저 방패병이 한 거라고~ 킇흐흐" 용사의 표정이 썩어가며 점점 분노로 물들어갔다. 격렬해지는 공격과 공주의 마법 지원이 나를 몰아붙였고, 결국 몸에 상처를 입혔다. 잔 상처는 점점 늘어가서 결국 내 팔 하나가 날아갔다. '재생... 아니다. 그만 재생해야겠다.' 한쪽 팔로 용사의 공격과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흘리며 내게 돌격해 오는 탱커를 막았다. 그때 거대한 마법창이 내 가슴을 꿰뚫었고 용사의 엑스칼리버가 금빛으로 밝게 빛나더니 순식간에 내 목을 베었다. 목이 날아가며 내 몸이 보였고 죽기 전에 용사 파티에게 저주의 마안으로 강력한 저주를 새겨주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금빛 검기에 머리가 박살났다. . . . . . "잘잤다... 이번에는 몇 년이나 지났으려나...?" 나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은 내가 어째서 일어났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실 불사신이다. 내가 어떤 이유로든 죽는다면, 부활 시기가 무작위로 정해지고 죽었던 곳에서 깨어나게 된다. '저번에는 바위 사이에서 일어나서 애를 먹었었지. 쩝.' 완벽히 재생된 몸을 몇 번 움직여 보고 마왕의 방으로 들어가니, 예상대로 방에는 다섯 구의 시체가 있었다. 용사, 탱커, 힐러, 공주, 그리고 마왕의 시체까지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용사 파티는 아마 내가 걸어 놓은 저주로 인해 죽었을 것이고, 마왕님은 엑스칼리버에 꽂힌 채 죽었을 것이다. "빙고~" 마왕님의 가슴에 빛을 잃은 엑스칼리버가 꽂혀 있었다. 나는 마왕성에 있는 옛 동료들의 시체들을 모두 모아 마왕의 방에 옮겨 놓았다. 그리고 검은 불꽃으로 모든 시체를 태워버렸다. "담 생에는 평범하게 태어나쇼..."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가면을 벗었다. 마왕군은 이제 없다. 그러니 미소의 광대도 사라질 때이다. 가면을 불 속에 던지며 앞머리를 올렸다. "후.... 이번 생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왕성을 나가기 위해 돈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는데, 마왕님이 매번 앉아 계시던 왕좌 뒤에서 보라색 구슬이 보였다. 그 구슬을 집어 든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 마왕님 진짜 이걸 남기고 가신 거예요?" '마왕의 기원',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구슬의 이름이다. 다음 마왕을 정할 때 넘겨주는 성물인데, 저것을 지금 내게 남긴 것이다. "... 농이 아니었군요. 마왕님." 과거 내게 마왕직을 이어달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마왕님의 짓궂은 농담이라고 치부하며 웃어넘겼던 일. 그것이 거짓말처럼 나에게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걸 남겼다는 것은, 마왕님이 내가 불사신인 걸 알고 계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난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없는데... 마왕의 직감, 그런 건가?' 의심스러운 부분은 많지만, 마왕의 기원을 내가 발견한 이상 다음 마왕은 나다. 이 성물은 소유하거나 장착하는 형식의 물건이지만 난 먹을 거다. '그때 하신 말씀이 농이 아니었다는 게 참...' 마왕은 환생해도 마왕이 되는 운명을 타고난다. 그래서 마왕님도 그런 운명에 이끌려 마왕이 되셨다. 그 모든 원흉은 이 마왕의 기원이지만, 불사자인 내가 이것을 먹게 된다면 마왕이 될 운명은 끊어질 것이다. "아! 모르겠다! 마왕님, 하늘에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끊어드릴게요. 이 개 같은 운명을 제가 끊어드릴게." 나는 그대로 마왕의 기원을 입안에 넣었다. 몸 안을 가득 채우는 마기에 잠시 움찔했지만, 금방 적응했고 완벽히 마기를 흡수했다. 넘쳐나는 힘과 마기, 마력! 그리고 전에는 쓸 때마다 점점 약해지던 마안의 패널티도 사라졌다. 마안은 죽어라 써도 나는 약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싸!! 이건 예상외의 수확인데?"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투시의 마안이 상시 발동으로 바뀌었다는 것. 특히 1단계가 상시 발동이라, 눈을 뜨는 순간 옷이 모두 투과되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변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렇다고 2단계를 켜고 다니면서 근육과 섬유질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잠시 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나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눈을 감고... 다니면?" 눈을 감고 다닌다면 투시 능력이 발동해도 시야가 '한 겹' 가려져 옷이나 벽이 투과되어 보이지 않을 터였다. '나 천재일지도? 후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눈을 감고 투시의 마안을 1단계로 바꾸었다. 다행히도 내 생각대로 무언가 투과되어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시야각이 넓어져 사각에서 오는 공격을 잘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몇 번 더 마안 테스트를 하고 나서 마왕성 밖으로 나왔다. "미... 미친?" 산꼭대기에 있던 마왕성에서 나오자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차가 굴러다니던 그 구태의연한 시대는 어디로 사라지고, 눈앞에는 높은 건물과 날아다니는 이동 수단이 가득했다. '발전이 얼마나 빠르면 저렇게...' 너무나도 멋진 광경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내 양 뺨을 강하게 손바닥으로 쳤다. 그리고 마왕성에 흑염을 던져 태워버렸다. '이게 내 마지막 전생의 미련이다. 흔적도 없이 타버려라.' 용사 파티의 시체도 안 쪽에서 잘 타고 있을것이다. 아참, 용사 파티가 죽은 이유는 마왕님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내가 죽기전 걸어둔 저주의 조건이 충족되어 머리가 터져 죽은 것이다. '아마 기쁨을 느끼면 죽는다.. 였던가?' 여튼 나는 불타는 마왕성을 뒤로 산을 내려가 저 신식 문명으로 가득한 곳으로 걸어갔다. "기대되네~" 쉬면서 써봤음
  • 밀하우스 2026-03-20 16:41:11 투시 1단계는 변태, 2단계는 근육과 섬유질.... 진짜 극한의 이지선다군요 저처럼 비위 약한 사람은 2단계는커녕 1단계에서도 비위 상해버릴지도.. 1
  • 어중간한 인간 2026-03-20 16:42:10 ㅋㅋㅋㅋㅋㅋ 살짝 그런 느낌입니다 ㅋㅋ
  • 소리는내갸 2026-03-20 17:01:39 눈 감고 다니다가 무의식적으로 뜨는 경우도 있으니 안대를 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ㅋㅋㅋㅋ 레벨 높이면 온오프 기능 추가해달라고 싹싹 빌어야 하나ㅋㅋㅋ 1
  • 어중간한 인간 2026-03-20 17:18:42 ㅋㅋㅋㅋㅋㅋ 안대라 그럼 너무 반 갈 당할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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